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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 - 우리 사회에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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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 아산과 사회공헌활동

 

사람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가정과 사회, 국가의 근본도 역시 사람입니다. 사람이 건강 하고 유능하면 그와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과 사회, 국가는 오늘의 안정과 내일의 번 영을 약속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기적도 결국은 사람의 힘으로 빚 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크게 괴롭히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병고와 가난이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괴로움은 서로 악순환의 상관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병치레를 하다 보면 가난할 수밖 에 없고, 가난하기에 온전히 치료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고 유능한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현대’의 재산을 다 시 ‘사람’을 위한 일에 뜻있게 쓰는 것은 본인이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이었습니다. - 1977년 7월 1일 아산재단 설립 발표 기자회견 중에서 -

 

 

1977년 우리나라 최초의 복지재단인 ‘아산재단’ 설립

아산 정주영 창업자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불우한 환경을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와 정열로 이겨내고 한국의 경제 발전을 선도했어요.

 

아산재단설립발표

아산은 국내외 수많은 역사적 사업을 주도하면서도 ‘함께 잘 사는 사회공동체’를 꿈꾸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신념을 갖고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 여러 복지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민간 부문의 사회복지사업 범위는 자선이나 전쟁고아, 장애인들을 수용·보호하는 시설 운영 정도에 불과했어요. 더욱이 이들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복지단체는 거의 없었죠.

 

 

1977년 7월 1일 아산은 현대건설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으로 개인 재산을 내놓으면서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이하 아산재단)을 탄생시켰습니다. 아산재단은 설립 당시 현대건설 총 발행주식의 50%(약 500억원)를 기본자산으로 했는데, 아산재단에 출연한 총 발행주식 50%는 아산의 개인 지분이었어요.

 

당시 정부의 연간 보건·사회보장예산이 2천400억원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500억원 규모의 재단 설립은 실로 엄청난 규모였죠.

이렇게 설립된 아산재단의 사업은 의료, 사회복지 지원사업과 학술연구 지원 사업, 장학 사업 등 4개 부분으로 전개되었어요. 이 가운데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된 사업은 의료취약 지역에 대한 병원 설립과 장애인 및 의료복지단체 등 사회복지단체에 대한 지원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의사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지역이 많아 ‘유의촌’과 ‘무의촌’이 지역을 구분하는 잣대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산재단은 창설 이듬해부터 인제, 정읍, 보성, 보령, 영덕, 홍천, 강릉 등에 병원을 지어 농어촌 주민들에게 값싸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어요.

1977년 7월 21일 인제, 정읍, 보성, 보령, 영덕 등 5개 지역에 병원 부지를 확보하고 설계를 완성했죠.

 

재단 창립 1주년을 맞은 1978년 7월 1일 정읍종합병원 준공을 시작으로 1년 6개월 만인 1979년 3월말까지 영덕종합병원을 완공, 개원했다. 1980년에는 60만명에 달하는 농어민들을 진료했고, 재단에서는 이들의 진료비를 위해 26억원의 의료비를 부담했어요.

울산대학교병원

 

 

한편, 설립 당시에 “쓸만한 의사는 모조리 뽑아 가서 미국에 의사가 없다”는 뒷말을 들었을 정도로 정예의 의료진으로 시작한 아산병원은 국내 최대의 선진 의료 기술을 보유한 병원으로 발전해 세계 각국의 의료진들이 연수 교육을 받으러 오는 병원으로 발전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에 맞춰 아산재단은 사회복지 지원 사업과 학술연구지원 사업, 장학 사업 등에도 활발한 지원을 해왔습니다.

아산재단의 사회복지 단체 지원 사업은 심신장애인, 무의무탁 노인 및 부녀, 불우 청소년을 수용하고 있는 사회복지단체에 대해 자립기반을 조성해 주고 직업교육 등을 통한 재활 사업을 중심으로 했습니다.

또한 전국의 대학과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인문, 사회, 이학, 공학 등 총 6개 부분에 연구개발 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한편, 학교별로 모범근로자의 자녀, 모범근로학생, 성적우수학생 등을 선정해 고등교육 대상자를 중점 지원했다. 아산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2011년 10월 정몽준 이사장은 가족들과 현대중공업 그룹이 당시 5천억원을 출연해 아산의 남기신 뜻을 계승할 ‘아산나눔재단’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아산나눔재단은 교육과 소득의 불균형으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일에 방점을 두고 청년들의창업정신 고양을 돕고 있습니다.

 

 


교육·의료·생활 등 지역사회 인프라 구축 ‘앞장’

아산은 산업사회 발전을 위해 현장에 고급 기술인력이 필요함을 인식했고, 경쟁력 있는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1969년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직을 맡았습니다. 1969년 12월 24일 울산공과대학(現 울산대학교)의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울산대학교

1970년부터 기계, 전기, 금속, 토목, 공업화학 등 5개 학과에200명을 모집했다. 현장에서 근무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진행하는 산학협력시스템으로 진행되었어요.

울산공과대학은 1984년 10월에 종합대학 승격 인가를 받아1985년에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사회과학대학, 인문대학의 4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보유한 종합대학인 울산대학교로 탈바꿈했어요.

 

울산공업대학과 더불어 1973년 고급 기술인력과 현장의 기능공 사이 교량적 역할을 수행할 중견 기술인력이 필요해짐에 따라 울산공과대학 부설 공업전문학교(現울산과학대학교)가 개교했습니다.

 

한편, 울산이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되자 1972년 20만명에 미치지 못한 인구가 1973년부터 1982년까지 매년 2~6만명씩 증가해 1979년에는 40만명, 1980년에는 50만명을 넘어서게 됐는데요. 급속한 인구 증가로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해지자 아산은 1976년 학교법인 현대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습니다.

1978년 현대중학교와 현대공업고등학교, 1981년 현대여자고등학교(現 현대청운고등학교), 1984년 현대여자중학교(現 현대청운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 등 총 5개의 학교를 개교했습니다.

 

아산은 울산 동구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이바지했는데요. 1975년 동구 전하동에 9개과 120병상으로 해성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이 병원은 울산 최초의 종합병원으로, 현대조선 부속병원으로 시작해 1997년 울산대학교병원이 됐죠. 또한 1977년에는 울산 지역 최초의 현대적 쇼핑 시설인 현대쇼핑센터를 개점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예술, 문화, 체육시설을 건립해운영했습니다. 1991년 한마음회관, 미포회관 건립을 시작으로, 1994년 동부회관과 동부2회관, 1995년 서부회관,1997년 대송회관 등 6개의 문화 체육시설을 차례대로 건립했습니다. 1998년에는 대규모 공연시설인 현대예술관을 개관했습니다. 2001년에는 동구 전하동과 서부동에 걸쳐 현대예술공원을 조성해 울산시에 기부하기도 했어요.

한마음회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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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나눔 정신, 그 실천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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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이해의 시작: 평범함의 발견으로부터

아산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관여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삶의 폭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업가로만 이해되는 아산이 아니라 삶의 전 분야에 걸쳐 흔적을 남긴 사람이기에 기업가라는 한분야만을 가지고 아산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간 아산에 대한 평가는 주로 성공한 기업인에 초점이 맞춰지거나, 그의 인간적 면모 및 성장과정의 문제는 신화화 내지는 영웅화의 장치로 활용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웅화, 신화화된 인물이 아닌 일상인, 생활인으로서의 아산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우리역사 속에서 ‘아산현상’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천착돼 모든 역사적 기억의 전승이 그러하 듯 우리에게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아산에 대한 대중적·학문적 관심이 공통적으로 향하는 곳은 그의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분명 인간적 능력이자 면모입니다. 아산을 향하는 시선이 압도적으로 그의 리더십과 비범성에 쏠려 있다는 것은, 아산 개인의 인간적 능력과 면모가 그만큼 비범하고도 강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산의 리더십은 아산 읽기의 핵심부를 차지해 왔고,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범함을 넘어서는 평범함의 발견을 통해 그의 삶을 평가하고자 합니다. 아산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 순간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노력을 했을 때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그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삶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인물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해야 합니다.

 

 

아산 나눔 정신의 근간

아산은 자신의 성취를 ‘나누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아산 나눔의 본질은 이루고 나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나누면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아산 나눔의 원천은 그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가난을 통해 성실과 근면을 배웠으며, 장남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 그리고 긍정적 사고는 그를 더욱 굳세게 했습니다. 어릴 적 배웠던 서당 교육은 그를 단련시키는 채찍이었으며, 폭넓은 독서와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그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아산은 수많은 시련과 도전을 통해 교훈을 얻었으며, 창조적 예지로 어려운 일들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일화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삶의자세들이 아산 나눔 정신의 근간을 이룹니다.

 

 

아산의 실천적 나눔

아산의 나눔은 크게 ‘나와의 나눔’, ‘사회와의 나눔’, ‘국가와의 나눔’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나와의 나눔입니다. 근검·절약이 생활화되어 있는 아산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약속에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자기와의 약속에서 나오는 것이 신용입니다.

아산은 신용을 나누는 것이 사업이며, 신뢰가 자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가족이 나눔의 원천 역할을 했습니다. ‘밥공동체는 생각 공동체’라는 말을 깊이 새기며 가족의 질서와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직원들에 대해서도 먹는 것과 자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식사와 거주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공동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생각했던 아산의 꿈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회와의 나눔입니다. 아산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아산사회복지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아산재단의 첫 사업이 농어촌 벽지의 병원 사업이었습니다.

당시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실시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근대화의 풍요 속에 소외당하고 있던 농어촌벽지 주민들에게 의료혜택을 베풀겠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이었습니다. 아산은 아산재단을 통해 부의 사회환원을 몸으로 실천하면서 기업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아산은 1969년 한국지역사회교육후원회가 발족할 당시부터 주도적 제안자였습니다. 모든 물질적·재정적지원은 물론이고 직접 참여하여 지역사회학교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지역사회학교운동은 교육개혁위원회의 개혁안에 반영돼 지금 학교운영위원회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그 외에도 문학인을 위한 해변시인학교와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수많은 대학에 통 큰 기부를 한 사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와의 나눔입니다. 아산은 국가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지금의 국가관과 아산이 경험한 그 당시의 국가관은 일정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하고, 그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아산의 국가관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기적은 없다. 오로지 노력만이 있을 뿐’이라고 독려했던 ‘88서울올림픽 유치’,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소떼몰이 방북’, ‘금강산 개발 사업’ 등은 국가와의 나눔을 실천한 사례들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남북교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했던 아산,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경제적 욕심 없이 인도적 차원에서 노력했다는 사실은 반드시 재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눔 정신에 기반한 경영이념

아산의 나눔에 대한 생각은 기업 경영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현대의 경영이념 제5조는 ‘풍요로운 국가 건설과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한다’입니다. 경영이념을 국가와 인류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을 지향하는 나눔 정신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목적과 정신은 돈을 벌어 나 개인, 또는 내 가족만 풍족하게 살고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그 이윤으로 내 가정을 안정시키고 나아가서 사회에 기여, 봉사하면서 인간 답게 살고자 하는 것이 그 진정한 정신이다”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 아산이 지향했던 나눔의 본질적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나눔의 공동체 꿈 꿔

아산이 가지고 있었던 나눔 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고, 수동적인 대상자로서의 나눔 수혜자가 아니라 도움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발적인 주체로서의 ‘자립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립의지가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 나눔 철학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인간존중의 정신입니다.

아산 나눔의 핵심은 ‘사람’입니다. 기업 경영은 물론이고 아산의 사회적 활동은 궁극적으로는 아산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 대한 애정을 실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의미는 같이 숨 쉬고 생활하는 공동체로서의 사람입니다. 아산의 희망은 사람이었고, 사람이 존중받고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산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이상향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결국 인간존중의 정신과 연결됩니다. 인간존중의 정신은 가장 기본적으로 당시의 어려운 서민들의 삶에서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 주어야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했습니다. 이 점은 아산사회 복지재단의 휘호인 ‘더불어 손잡고’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전히 유효한 아산의 실천적 나눔 정신

아산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불어 나누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입니다.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꿈꾸었던 아산은 나눔의 실천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역사속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산을 현재로 불러오는 이유입니다. 아산의 나눔 실천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확인해 주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희망찬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아산의 나눔 정신과 그의 삶을 통해 그려봅니다. 이것이 아산 나눔이 주는 시대적 의미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습니다. 아산의 실천적 나눔이 ‘그때 거기’에 함몰되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는 물론 ‘내일 저기’를 살아갈 사람들에게도 ‘살아있는 힘’의 원천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