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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 내추럴 와인, 맛의 지평을 넓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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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와인잔을 잡고 있는 모습

“내추럴 와인이 뭐에요?”

푸드 칼럼니스트를 본업으로 두고 부업으로 47스토어라는 내추럴 와인 소매점을 운영하는 내가 요새 직업 양면으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가장 짧은 버전의 답변은 “쉽게 말해 재래식 와인”이에요.

재래식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단박에 이해하는 이들이 많아요. 조금 더 덧붙인 버전의 답변도 있어요.

 

재래식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 방법대로
자연에 맡겨서 포도를 기르고,

와인 양조도 인공적인 첨가물 없이
자연 그대로 발효가 일어나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차이죠.
요즘 와인은 공산품이나 다름없어져서
그렇지 않잖아요.

와인병과 와인잔 일러스트

 

온전한 버전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와인은 고도의 산업화 이후
농산물이 아닌 공산품처럼 됐어요.
산업화를 가져온 기술들 덕분에
포도와 와인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효율적으로 많은 양의 와인을
원하는 맛과 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때죠.
공장에서 양산해 내는 간장을
생각하면 돼요.
반면 내추럴 와인은 집간장이랄까요.
공산품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등장한 움직임이에요.
산업화 이전까지 이어 내려온
재배법과 양조법을 복원해
인간의 통제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과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죠.

 

 

하지만 사실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답은 따로 있어요.

 

일반 와인보다 산미가 대체로 높고
너무 묵직하지 않고 마시기 편한 게 특징이에요.
와인을 만들면서 생기는 찌꺼기를 거르지 않아
탁한 것들도 많고요.
자연 그대로 포도를 키우고 양조해서
통제되지 않은 더 다양한 맛을 가진 점이
가장 재미있죠.

 

아무튼 가장 궁금한 것은 실제로 맛이, 향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니까. 대신 다음 설명까지 덧붙이면 살짝 실망하는 반응을 보곤 합니다.

와인병 이미지

 

“산업화된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서 포도 수확량도 적고 양조되는 와인의 양도 적은데요. 그러다 보니 일반 와인보다 비싸죠. 1~2만 원대가 없고 4만 원대부터 시작돼요.”

 

렇습니다. 내추럴 와인은 저렴하지 않죠. 대형 마트에 4,900원짜리 와인이 등장한 이 시대에 말입니다.

 

포도 재배나 와인 양조 기술은 산업화 시대 이후로 무척 효율적으로 발전했어요. 더 많은 포도가 열리게 하는 재배 기술이 도입되었고, 기계를 이용하면 수확도 쉽죠. 그리고 와인 양조는 거의 최첨단 실험실에 가깝습니다.

 

자연의 변수를 모두 통제하고 사람의 의도대로 어떤 와인이든 만들어낼 수 있어요. 와인산업에서 이용되는 와인 양조용 효모에는 숫제 와인의 맛과 향을 설명하는 것처럼 ‘바닐라, 오크, 사과 향이 나는 효모’ 등의 설명이 붙어 있어요.

 

테루아(Terroir, 땅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포도밭을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을 의미함)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와인은 인공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반면 내추럴 와인은 앞서 설명한 산업화된 기술을 모두 거부해요. 농사부터 철저한 유기농 또는 바이오 다이나믹이라는 자연 농사법을 고집합니다.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은 자연친화농법 중 하나로 자연과의 조화, 건강한 토양 조성 등을 중시해요. 일반 유기농법보다도 관리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나열된 와인잔

 

거기에 특히, 와인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재발효와 산화를 막아주는 유용한 첨가물인 이산화황 사용에 대해서는 결벽적일 정도로 부정적이에요.

이는 산업 측면에서 보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품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추럴 와인 움직임이 유럽으로부터 태동하던 시기부터 내추럴 와인은 이미 와인 업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았어요.

 

내추럴 와인 업계에선 내추럴 와인을 ‘살아있는 와인’이라고 표현해요.

와인병 안의 효모와 박테리아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태가 자꾸만 변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풀어 말하자면 같은 와인이라도 내추럴 와인 특유의 농장 곳간 냄새(흔히 두엄 냄새로 표현되기도 한다)가 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상태가 안정되어 짜릿한 꽃향기를 내기도 해요.

 

심지어 같은 와인을 한날한시에 따도 병마다 상태가 달라요.

상품으로서 엉망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죠.

 

게다가 전통 있는 와인 명가들은 내추럴 와인이라는 말이 유럽과 호주, 일본을 거쳐 미국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기도 전부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을 만들고 있었어요.

물론 어마어마한 고가의 와인들입니다.

 

이 때문에 컨벤셔널 와인이라 통칭되는 기존의 와인 업계에선 내추럴 와인을 어설픈 마케팅 수작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불빛에 비친 와인잔

 

그럼에도 내추럴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데요. 한국의 내추럴 와인 붐은 세계적인 내추럴 와인의 인기의 한 지류이지만 그 양상은 좀 다릅니다.

 

한국 최초의 내추럴 와인 바는 2017년에 문을 열었어요.

바로 서울 한남동의 ‘바 빅 라이츠’입니다.


거기에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인 ‘제로 컴플렉스’ 이충후 셰프와 프랑스인 소믈리에 클레멍 토마상이 한국의 내추럴 와인 붐을 선도했어요. 하지만 2018년과 2019년까지의 한국에서 내추럴 와인은 하나의 새로운 패션 아이템과 같았습니다.

 

을지로 일대의 뉴트로 트렌드와 같이 유행의 하나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소위 얼리 어댑터를 자처하는 ‘힙한’ 사람들의 과시적인 문화처럼 보인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난해 겨울 무렵부터 시작해 내추럴 와인은 놀라울 정도로 대중화되었습니다.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다루는 소매점들이 생겨나고,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과 바들은 당연한 듯이 내추럴 와인을 들여놓고 있어요. 부산, 대구 등 지방 대도시는 물론 제주와 진주, 전주 등 방방곡곡에서 내추럴 와인 전문점 개업 소식이 들려와요.

 

손가락 몇 개로 꼽던 내추럴 와인 수입사의 수도 현재 30여 개로 늘었어요. 그만큼 산업이 커졌고, 전국적인 문화로 정착되어가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점잖은 컨벤셔널 와인의 대안으로서 하나의 서브 컬처처럼 작용하는 것이 현재의 내추럴 와인이에요. 내추럴 와인은 농부의 개성과 철학이 분방하게 드러나는 데다가 맛도 좋아요.

 

특히나 한식과의 조화는 발효될 때 나는 냄새(발효취)라는 공통점을 지닌 내추럴 와인이 컨벤셔널 와인보다 우수합니다.

 

엔트리급 내추럴 와인 중 대표적인 스테파노 벨로티의 로제(소매점 기준 5만 원 내외)는 산딸기향에 장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칠맛이 뒤를 잇죠.

흔한 백반집 제육볶음과 먹어도 잘 어울려요.

 

내추럴 와인은 초저가도, 초고가도 아닌 어중간한 가격대라는 한계가 명확하지만, 외식업계에 찾아온 새로운 바람이요,

 

하나의 대안으로서 앞으로도 쭉 이어질 물결입니다. 환경을 더 이상 인공에 병들게 하지 않고,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끼고 존중하는, 지구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은 덤입니다.

 

 

* 글 이해림 l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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