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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I INSIDE - "울산조선소 사업계획서" 들여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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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 인력·지반·사람·자금 등 조선소 건설 기밀 빼곡히

현대중공업의 시작을 위한 사업계획서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아 현대중공업의 시작인 ‘울산조선소’ 건설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이 책자가 사보편집실에 전달됐어요.

책자를 보낸 이는 정태조 전무(전 엔진사업부 총괄, 1969~1997년 재직). 정 전무는 1969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71년 현대건설 기획실 소속 10여명의 직원들이 포함된 조선사업부로 자리를 옮겨 울산조선소 건설에 관한 초창기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했죠.

이 사업계획서는 1971년 정부로부터 조선소 건설 승인을 받고자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 제출하기 위한 자료로 제작됐으며 발간 부수는 총 50권이에요.

책자에는 당시 현대건설주식회사가 조선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과 시설 규모 및 건설 계획, 선박 건조능력 등을 분석한 내용이 상세히 담겨있다. 또한 A&P 애플도어사가 기술 협력회사로, 스코트 리스고우사는 기술협력 조선소로 언급돼 있어요.

책자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17만5천평의 부지에 드라이도크 1기, 골리앗 크레인 2기를 갖추고 25만9천 DWT 크기의 선박을 연간 5척 건조할 계획을 세웠어요. 선박은 협력회사들과의 협약에 따라 외국조선소에서 사용하는 초대형 유조선 설계에 따라 건조될 예정이었으며, 이를 위해 기술직 250명, 사무직 190명, 공원(工員) 3천460명 등 총 3천900명을 고용하고자 했죠.

또한 조선소 건설을 위한 자본과 대출금, 각종 원자재 및 기자재의 조달 계획뿐만 아니라 선박 건조 비용에 따른 예상 손익 계산서 등도 연간으로 작성돼 있어요.

아울러 1950년도부터 1970년도까지 해상 무역량 및 선복량을 비교하고 다가올 1980년도의 국가별 신조 수요를 예측하는 한편, 석유 유동량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세계 모든 조선소가 향후 수년간 수주가 꽉 차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조선사업의 시장성이 충분함을 증명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책자에는 필요한 기술 인력 및 교육 계획과 철강 생산 능력 등 조선업 관련 산업 현황에 대한 예측 자료가 포함돼 있어요. 그리고 말미에는 울산조선소의 공장배치도와 함께 1973년 3월부터의 선박 건조 계획표, 공정 계통도, 사업추진 일정표, 1971년의 미포만 수심도 및 해저 기반암 심도 등이 담겼죠.

백년대계 부지 선정과 조선사업계획 수립

1969년 10월, 현대는 조선소 건설을 위한 부지 선정 작업에 착수했어요. 1차 예정부지로 울산 내항 염포리 소재 땅을 선정했죠. 바람이 없어 방파제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그러나 대부분 매립지로 지반이 약했죠. 외국 기술진과 함께 면밀히 검토한 결과 조선소 건설을 강행한다면 공사비가 예상보다 2~3배 더 들 것으로 분석됐어요.

다시 한번 지반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외항의 전하만이 발견됐어요. 남쪽으로 미포만, 일산만이 연접해 있으면서 백사장이 고운 해수욕장이었죠. 주택은 300호 정도였어요. 지형이 좋았고, 무엇보다 튼튼한 암반이 넓게 펼쳐져 있었어요. 파도가 약간 있었으나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죠. 보고를 받고 내려온 정주영 창업자는 바로 기초조사를 지시했어요.

6곳의 지반조사 결과는 아주 좋았어요. 문제는 기후와 해상 여건이었죠. 현대는 국립건설연구소와 중앙관상대에 조사분석을 의뢰했어요. 국립건설연구소는 ‘방파제를 건설하면 파도가 1미터 이하로 가라앉을 수 있다’, 중앙관상대는 ‘초속 20m미터 바람이 부는 날은 연중 극히 짧은 기간’이라는 보고서를 보내왔어요. 긍정적 결과를 받아 든 조선사업부는 1971년 중반부터 토지를 매입하는 등 부지 조성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어요.

이즈음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이 뒤따랐어요. 세계 조선·해운 시장에서는 선박의 대형화 추세가 뚜렷해지자 15만~20만톤급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건설하려던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 50만톤급 이상의 초대형 유조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죠.

당시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의 조선소는 이미 100만톤급 이상의 설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도 나가사키조선소에 100만톤 규모의 도크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죠. 현대는 10만~20만톤급 규모의 조선시설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이에 1971년 7월 척당 최대 건조능력을 50만톤급으로 하고, 26만~30만톤급 VLCC를 연간 5척 건조한다는 내용의 ‘조선사업계획서’를 확정했어요. 또한 차관 도입으로 조달한 막대한 투자비를 감당하기 위해 조선소 건설과 VLCC 건조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어요.

이후에도 조선사업계획은 여러 차례 수정됐다. 1972년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면서 최대 건조능력 70만톤급 규모로 확대했어요. 원래 1기로 잡혀 있던 드라이도크를 둘로 나누어 건설하기로 했죠. 부지 198만 3471㎡(매입 토지 99만 1735.5㎡, 매립지 99만 1735.5㎡), 건물 면적 14만 1547㎡로 크게 확충했어요. 그리고 1년 후 1973년, 다시 최대 건조능력 100만톤급 규모로 사업계획을 확대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