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hhi 현대중공업 기업블로그

HHI INSIDE - [재미있는 배 이야기11] 빈 배에 바닷물을 채우는 이유

현재위치
2016-06-17

축구장만한 배가 넘어지지 않게 하려면?

 

종이배에 숨겨진 선박의 원리!

시냇물에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 물결 따라 하늘하늘 떠내려가던 종이배는 살여울에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진다.

 

옆에 있던 동무. 종이배 안에 잔자갈 하나 넣고 바닥에 깔릴 만큼 물을 담는다. 종이배는 균형을 유지하면서 유유히 살여울을 빠져 나간다.

어린 시절 한 번 쯤 경험해 봤을 것 같은 추억의 한 켠에 ‘조선공학'이 깃들어 있다.

 

 

복원력과 추진력 확보를 위한 ‘평형수’

축구장 3개 크기의 대형 선박도 원리는 마찬가지.

빈 배로 운항할 경우, 무게중심이 위쪽에 있어 앞뒤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전복할 위험이 있고, 프로펠러가 잠기지 못해 추진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지난 2014년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1차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건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선체 밑바닥과 좌우에 밸러스트 탱크(Ballast Tank)’라는 별도의 탱크를 설치하고, 여기에 물을 담는데, 이를 ‘밸러스트 수(水)’, 또는 ‘평형수(平衡水)’라고 한다.

 

오뚝이 장난감처럼 무게중심을 아래로 쏠리게 하여 선체 일부가 물에 잠기게 하여 복원력과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이다.

밸러스트 탱크를 만들 수 없었던 20세기 중반 이전의 목선(木船)에는 모래주머니 또는 자갈을 깔아서 배의 평형을 유지했는데, ‘밸러스트’의 원뜻이 곧 ‘까는 자갈(모래주머니)’이다.

 

빈 배로 항해해야 하는 경우, 평형수는 그 선박이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3분의 1까지 채울 수 있도록 설계하는데, 30만톤(GT)급 원유운반선이라면 밸러스트 탱크의 용량이 10만톤이 된다는 얘기다.

출항하는 항구에서 바닷물을 넣고, 목적지에서 화물을 실으면 이 물을 그쪽 항구에 버리는데, 전 세계의 바다 위에서 이렇게 이동하는 평형수는 매년 1백억톤에 이른다.

 

 

해양 생물 유입으로 생태계 교란 일으키기도

평형수에 함께 유입된 다시마, 불가사리, 홍합, 해파리 등 해양생물이 세계 각 해역에서 방출되면서 토착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토종 생태계에 혼란을 주는 블루길이나 베스같은 물고기, 미국자리공, 돼지풀 등의 외래생물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 유입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이동하는 해양생물은 하루 7천여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제해사기구(IMO)는 2004년 ’선박밸러스트수 규정’을 도입하여 평형수에서 해양생물을 사멸(死滅)시키는 장치를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했다.

2009년부터 밸러스트 탱크 용량이 5천입방미터급(㎥) 이하인 기존 선박과 신조 선박은 공해상에서 평형수를 교환하여 입항하거나 정화장치를 설치하도록 했으며, 2012년부터는 모든 신조 선박에 해양생물 정화장치를 설치할 것을 규정했다.

 

IMO 규정이 전 세계의 신조선(매년 1천1백여척)과 기존선(3만여 척)에 모두 적용되는 2017년부터는 해양생물 정화장치의 시장 규모가 최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기술 선점을 위한 개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화장치는 오존처리, 전기분해, 자외선, 화학약품, 탈산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우리 회사는 전기분해 방식의 ‘하이밸러스트(HiBallast)’, 자외선 살균 방식의 ‘에코밸러스트(EcoBallast)’ 등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의 조선 기술력이 이제는 바다의 ‘환경지킴이’로 우뚝 설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글: 조용수 상무보(문화부문) / 편집: 기업블로그 운영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