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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I INSIDE - 창업자 정신에서 현대의 길을 묻다(2화) - 미래를 위한 현대중공업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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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8

[사진]창업자 정신에서 현대의 길을 묻다 2화(1) - 미래를 위한 현대중공업 착공 이 이미지에는 네이버 나눔글꼴을 일부 적용했습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현대중공업 정문에 들어서면, 대조립공장 외벽에 걸린 정주영 창업자 말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문구는 1972년 현대중공업 설립 당시, 정주영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기업가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죠.

 

정주영 창업자는 1960년대 중반부터 조선소 건설을 구상합니다. 이춘림 전() 현대중공업 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이틀에 걸쳐 일본 요코하마 조선소, 가와사키조선소, 고베 조선소를 시찰하고는 “때가 되면 국내에 조선소를 만들어 큰일을 하겠다”는 구상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창업자는 조선산업이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여러 연관 산업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꼭 필요하며, 대규모 외화를 벌어들여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또한 현대가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소망 속에 조선소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참고)

 

 

난제 중에 난제 ‘차관 도입’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습니다. 그중 최대 관건은 ‘차관 도입’이었습니다.

사업계획서상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만 6천3백만 달러. 그중 4천3백만 달러를 외자로 조달해야 했죠.

이 외자는 1971년 우리나라 경제개발 예산의 15%에 달할 만큼 막대한 규모였습니다.

우선 미국, 일본에서 차관 도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배 만들 능력이 없다며 거절당했습니다. 특히, 일본 통산성(通産省)이 현대의 건조능력은 5만톤 정도밖에 안 되므로 20만톤급 이상 대형선박 건조는 불가능하다고 말해, 미쓰비시와의 합작도 물거품이 됩니다.

정주영 창업자마저 정부에 난처함을 호소할 만큼 ‘대규모 차관 도입’은 난제 중에 난제였습니다.

 

 

‘500원 지폐’의 신화가 시작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결국 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정주영 창업자는 임직원들과 함께 영국 선박 엔지니어링 회사인 A&P애플도어사를 방문해, 롱바톰(Longbattom) 회장과 차관 도입을 위한 담판을 짓습니다.

당시 롱바톰 회장은 한국의 차관상환능력과 성장잠재력 등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를 반박할 만한 자료가 없었죠.

[사진]창업자 정신에서 현대의 길을 묻다 2화(2) -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

△ 정주영 창업자가 A&P애플도어사 롱바톰(Longbattom) 회장 앞에 꺼내든 500원 지폐. 거북선 그림을 보이며 조선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설명했다.

 

모두가 난감해하는 상황에서 정주영 창업자는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당신네 영국의 조선 역사는 1800년대부터 알고 있는데, 우리는 벌써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오. 우리가 당신네보다 300년이나 조선 역사가 앞서 있었소. 다만 그 후 쇄국 정책으로 산업화가 늦어져 국민의 능력과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 우리의 잠재력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소”  (‘이 땅에 태어나서’ )

 

정주영 창업자는 여러 차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롱바톰 회장도 차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롱바톰 회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현대가 기계, 토목공사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영국 버클레이즈은행에 대형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능력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보냈습니다.

[사진]창업자 정신에서 현대의 길을 묻다 2화(3) - 영국 애플도어사와 기술제휴를 협의하고 있는 창업자

△ 영국 애플도어사와 기술제휴를 협의하고 있는 창업자

 

 

26만톤급 유조선 2척 수주

현대는 가까스로 버클레이즈은행의 심사를 통과했지만, 영국수출신용보증국(ECGD)에서 “배를 살 사람 없이는 차관을 승인할 수 없다”고 해 제동이 걸렸습니다.

정주영 창업자는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의 주선을 통해 그리스 선주인 조지 리바노스(George Livanos) 회장을 만났고, 울산 미포만 사진과 지도, 대형 유조선 도면만으로 26만톤급 유조선 2척을 수주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로써 ECGD의 보증까지 얻어낸 현대는 영국, 스웨덴 등 5개국 은행과의 차관 협정을 통해 5천만 달러 이상의 외자를 조달받아,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기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