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채용 - 40여년을 달려온 초심
- 현재위치
- 2019-12-16
- 김병희 기정 정년 퇴직 감사편지
현대중공업 의장생산부 김병희 기정
울산 미포만에 둥지를 튼 지 40여년이 지나갔네요. 그 첫 시작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1976년 1월 15일, 나는 울산공업고등학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현대조선’에서 최고 기능인의 꿈을 안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러나 부푼 꿈도 잠시, 살을 에는 겨울 맹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단 5일 만에 사표를 던졌습니다.
“군대 지원을 할까?” 삶에서 도피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회사에서 재입사를 통보하는 전보를 보내왔어요. 며칠을 고민하던 나는 마음을 굳히고 “현대조선에 재입사하면 죽어서 나온다!”라는 혈서(血書)를 썼죠. 그 혈서가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의 꿈이고 비전이 됐으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 초심(初心)의 원동력이 됐어요.
회사를 다니며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515호선을 진행할 때 입니다.
시운전 중인 선박에 문제가 발생해 가공품을 측정해야 했던 나는 바지선을 타고 먼 바다로 향했어요.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7월의 태풍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강풍과 높은 파도로 뱃전이 심하게 롤링을 하는 통에 본선을 오르기 위해서 딱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아련한 추억이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Moss LNG선을 처음 건조했을 때도 또렷이 기억이 나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화물창 노즐(Dome Nozzle Piece, 액화천연가스가 유입/분출되도록 하는 핵심 부품)을 우리가 직접 개발한 공법으로 가공해 공정을 20일 이상 단축할 수 있었어요.
당시 선주가 외국보다 뛰어난 기술력이라며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했어요. 1천700여개의 부품 중 4개만 검사하고 전량 품질 검수를 우리에게 위임했는데, 이때는 정말 일을 하는 보람이 있었고 현대중공업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기쁨으로 나는 지금까지 총 20척의 Moss LNG선 건조에 참여했으며, 그 선박들은 현재 5대양 6대주를 힘차게 누비고 있어요.
나는 늘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현대중공업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발전해왔기 때문이죠. 남들은 한 개도 받기 어렵다는 ‘생산기계분야 대한민국명장’, ‘국가품질명장’이라는 칭호를 2개나 보유했고, 생산기술직으로 최고의 직위인 기정의 직위까지 오르게 되었어요.
순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에요.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과 격려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어요. 늘 감사했으며,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에요.
장기 수주 불황으로 조선업체들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고, 현대중공업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요. 이런 때에 회사를 떠나야 해서 선배 된 입장으로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굴의 투지와 강인한 추진력, 그리고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현대정신’이 있어요. “시련이란 뛰어넘으라고 있는 거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주영 창업자님의 명언처럼, 시련을 슬기롭게 뛰어넘으면 더욱더 강인한 현대중공업이 될 것이에요.
모두가 중지를 모아 위기 극복에 전력을 다해, 현대중공업이 재도약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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