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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 호계역, 100년 만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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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 개통한 지 올해로 딱 100년, 운행을 종료하고 북구 북울산역으로 이전

추억 서린 호계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 순간은 눈에 밟히죠. 함께한 시간이 100년이라면 이별의 무게감을 말해 뭐할까. 호계역이 사라진다는 건 역사 앞마당에 있는 정자와 그늘을 내주던 나무와의 이별이며, 호계 주변에서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던 표지판과도 이별이에요.

앞으로 폐역이 된 이곳에 역사박물관과 선형공원을 조성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아 다른 만남에 대한 기대를 밀어내요.

호계역 안 대합실에 들어서면 시간여행이 시작돼요. 일제 강점기 북구 동대산과 무룡산에서 벌목한 목재와 울산에서 생산된 곡식을 수탈해 전쟁 물자로 실어가 아픈 상처의 역사를 남긴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됐어요.

지금 모습의 호계역은 1958년 다시 만들어진 것이죠. 아담한 크기의 역사 안에 들어서면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동전 넣는 공중전화기가 묘하게 따듯함을 불러일으키며 옛 추억을 소환해요. 역무원이 상주하는 딱 하나뿐인 창구는 정지된 화면을 보는 것처럼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해요.

무엇보다 조경이 잘된 승강장은 우리가 기차역 하면 떠올리는 엽서 속의 그 모습으로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줘요. 사라지면 안 되는 모습 중 하나로 마음 깊은 곳에 넣어두죠.

세월 품은 가게들에 이어지는 발길

하루 평균 2천여명이 다녀간 이곳을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며 어찌 이별을 맞을까. 이별의 쓸쓸함을 걸음에 담고 역 주변으로 옮겨요. 몇 발자국 떼지 않아 오랜 세월을 품은 가게들이 눈에 띄어요.

70년 세월을 품은 귀향다방,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맞춤 양복 전문점인 골덴 양복점 등이 호계역의 오랜 친구로 역을 이용한 사람들과 함께 해왔죠. 지금은 지역 주민의 벗으로 남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내고 있어요.

지역 최대 5일장인 호계시장도 바로 근처에 위치해요. 1일과 6일, 장이 서는 날엔 덩달아 호계역이 들썩거릴 만큼 시끌벅적 하고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지만 장이 서지 않는 겨울엔 꽤나 조용하죠.

그래도 시장 입구에 파는 붕어빵을 손에 들고 조용한 시장을 한 바퀴 도는 재미가 쏠쏠할 만큼 상시 여는 가게가 많아요. 굳이 맛집 검색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멸치를 우려낸 냄새가 가득한, 수제비와 칼국수가 맛있는 전통시장이죠.

이별을 맞이한 쓸쓸함을 씻어주는 뜨끈한 국물 맛이 집에 와서도 생각나는 걸 보면 오랜 세월 음식을 하는 사람의 손에서는 조미료가 나온다는 어른들의 우스갯말이 맞나 봐요.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선물로 주고 가겠지만, 호계역과 함께 사라지는 많은 것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에요. 100년이 덧대어져 만들어진 따스함과 정겨움 그리고 익숙한 편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