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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 제로 웨이스트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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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 쌀 빨대에서 친환경 포장재까지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카페 보틀팩토리에서는 매달 한 번 ‘채우장’이라는 색다른 장터가 열립니다. 용기를 가져와 채워가라는 의미로, 비닐은 물론 소포장도 없이 물건이 놓여있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장터입니다.

채우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마켓과 다르게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품목을 살지 미리 정한 뒤 용기를 준비해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기름 등 액체 물품을 담기 위해 병도 미리 열탕 소독해두어야 합니다. 장바구니로 쓸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백과 소분하기 위한 천주머니, 유리병과 유리 용기 등을 채우면 장을 보기도 전에 장바구니는 꽤 무거워집니다.

핸드메이드 치약은 작은 틴 케이스에 덜어 사고, 참기름은 미리 열탕 소독해둔 병에 담아 옵니다. 속 비닐이 없어 흙이 묻은 대파나 물기가 있는 파슬리를 에코백에 그대로 넣고, 쌀이나 표고버섯 등은 작은 천 주머니를 따로 준비해 담아옵니다. 분명 불편합니다. 하지만 채우장을 찾는 이들의 호응은 뜨겁습니다. 일반 마트에 다녀오면 적지 않게 쌓이는 비닐 포장 쓰레기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제로 웨이스트 이미지(1)

 

최근 플라스틱, 비닐 등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Zero)해 낭비(Waste)를 없애려는 움직임‘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활발합니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활용이 아닌, 쓰레기의 양을 절대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채우장과 같은 팝업 마켓이 아닌, 상설 제로 웨이스트 숍이 하나둘 생기고 있는 이유입니다. 해외 사례까지 살펴보면 2014년 문을 연 독일의 패키지 프리 숍 ‘오리지널 운페어파크트(Original Unverpackt)’가 가장 빠릅니다.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으로 각자 가져온 가방이나 용기에 매장에 진열된 곡물·견과류·발사믹 식초·오일·간장 등을 담아 가도록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지구’와 시즌2를 예고하며 현재는 잠시 문을 닫은 서울 성수동의 ‘더 피커’가 대표적입니다.
둘 다 패키지 없는 식료품점이면서 한쪽에서는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운영합니다. 포장되어 있지 않은 견과류와 곡물, 과일과 채소를 원하는 양만큼 살 수 있고, 천 주머니와 에코백, 다회용 빨대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잡지 쓸(SSSL)에 따르면, 국내 제로 웨이스트 카페는 2018년 7월 기준 총 20여 곳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문제가 주목받게 된 계기는 지난해 4월 있었던 비닐 쓰레기 대란의 영향이 큽니다.
중국의 폐기물 수입 제한 조치에 따라 국내 일부 수도권의 수거 업체들이 폐비닐 수거 중단을 선언하면서 아파트마다, 골목마다 처리하지 못한 비닐이 수북이 쌓였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쓰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처음으로 불편을 체감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 1일에는 환경부의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제 10조’가 개정됐습니다.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소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억제하고 무상으로 제공해선 안 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규제 덕분에 무신경하게 사용하던 플라스틱 컵에 대해 되돌아보고 플라스틱은 되도록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실생활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이들도 늘었습니다. ‘필(必) 환경’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언급한 키워드로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가 하면 좋은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이미지(2)

과도한 쓰레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기업들도 발 빠르게 제로 웨이스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이슈가 된 것은 플라스틱 빨대입니다.

지난해 1월 미국 CNN은 “매년 800만 톤의 플라스틱 빨대가 바다에 버려진다”며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한 대학 연구팀은 코에 10cm가 넘는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이 영상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플라스틱 컵은 그나마 재활용이 되지만 플라스틱 빨대는 그대로 버려져 지구 환경이나 해양 생물에게 악영향을 줍니다.

먼저 스타벅스·이케아·맥도널드·월트 디즈니 등 글로벌 기업들이 플라스틱 빨대를 거부하고 나섰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종이 빨대와 빨대 없이 아이스 음료를 먹을 수 있는 플라스틱 컵을 개발했습니다. 이케아는 2020년까지 전 세계 이케아 모든 매장과 레스토랑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포함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전면 중단합니다.

먹어도 되는 쌀 빨대도 개발됐습니다. 국내 업체인 연지곤지의 제품으로 쌀과 타피오카를 섞어 만듭니다. 쌀 빨대는 평균 100~150일 내외 100% 자연분해 됩니다. 씹어서 먹어도 되고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도 분해됩니다. 지난해부터 메리어트 등 유명 호텔 체인과 SPC, 닥터로빈 등의 외식 업체가 이 쌀 빨대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송 쓰레기 문제도 주목받습니다. 최근 총알 배송, 새벽 배송 등 빠른 배송을 강조하는 온라인 쇼핑몰이 늘어나면서 배송 포장재 과잉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신선식품 등 빠른 배송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배송이 늘어나다 보니 개별 포장, 개별 배송이 늘었고, 이는 더 많은 포장 쓰레기를 발생시켰습니다. 국내 새벽 배송 시장 규모는 2015년 100억 원에서 지난해 4000억 원으로 급성장했습니다.

과도한 포장 쓰레기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하나둘 친환경 포장재를 도입하고 나섰습니다. CJ ENM오쇼핑은 지난해 6월부터 상품 포장에 종이 완충재와 종이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올 1월부터는 일부 식품 배송에 친환경 보랭 패키지를 도입했습니다. 스티로폼 박스 대신 보랭 효과 있는 종이 박스와 고흡수성 폴리머 대신 물을 넣은 아이스 팩, 비닐 테이프 대신 종이테이프를 사용합니다. 특히 순수한 물로 만들어진 아이스 팩은 사용 후 물을 따라 버린 후 비닐로 분리 배출할 수 있어 환경에 부담이 한결 덜합니다. 온라인 몰 마켓컬리는 냉동식품 포장에 사용하는 보랭 박스와 스티로폼 포장재를 집 앞에 두면 수거해갑니다. 마켓컬리는 “포장재 수거율이 2018년 9월 대비 올해 3월 2배 이상 늘었다”고 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이미지(3)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쓰레기 대란 1주년을 맞은 지난 3월 25일~28일 실시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및 해결 방안에 관한 대국민 인식도 조사’(한국리서치, 전국 성인 1010명 조사)에 따르면 쓰레기 대란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해야 할 최우선 정책으로 응답자의 60.3%가 ‘플라스틱 소비량 줄이기’를 꼽았습니다. 응답자의 57%는 지난 1년간 실제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였다”고 답했습니다. 41.6%는 사용량을 줄이지 않았다고 대답했는데, 그중 66%가 “소비자 선택권이 없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싶어도 대안이 없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분명 확산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비닐 대신 에코백을 내미는 소비자들이 있습니다. 배송 쓰레기가 늘어나자 기업에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와 쌀 빨대에 관심을 갖습니다. 쓰레기 없는 삶, 낭비 없는 삶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다른 한편 아쉬운 점도 선명합니다. 소비자들의 노력만으로는 플라스틱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권이 없고, 대안이 없어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 입니다. 흔히 환경 문제를 거론할 때 소비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생산자나 판매자의 준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착하게 팔아준다면, 착하게 사줄 소비자들은 있습니다.

 

글 유지연 │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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